박중열 외

박중열 대표(사진 오른쪽)는 물통을 이고 지고 가는 우간다 아이들에게 물통을 넣어 멜 수 있는 가방을 기부하고 있다. 아이들은 평소 이 가방을 책가방으로도 쓴다.

동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의 하루는 우물에 물 길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우물은 마을에서 걸어서 평균 30분 거리에 있다. 맨발의 아이들은 이 길을 하루 5~6번씩 왕복한다. 아이들은 10L짜리 노란색 플라스틱 통에 물을 가득 채워 돌아온다. 몸무게 20㎏ 안팎의 아이들이 10㎏쯤 되는 물통을 손에 들거나 머리에 인다. 아이들은 낑낑대며 물통을 옮기다가도 무게를 못 이겨 휘청거리다 자주 넘어지곤 한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돼 있지 않은 길이다 보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트럭과 자동차를 피하지 못해 사고를 당한 아이들도 많다. 디자이너 박중열(37)씨가 지난 2014년 사회적 기업 '제리백'을 만들어 물통 가방을 기부하기 시작한 이유다. "물 길러 갔다가 다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이고 목숨을 잃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살기 위해 물을 운반하는 건데 정말 안타깝지요."

제리백에서 만드는 물통 가방은 우간다 어린이들이 물통을 등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디자인된 원통형 배낭이다. 10L짜리 물통이 딱 맞게 들어간다. 우간다에서 천막을 만들 때 흔히 쓰는 가볍고 질긴 폴리에틸렌을 사용한 가방으로, 바람막이 옷을 만들 때 흔히 쓰는 재질이다. 파란색과 노란색 등 눈에 잘 띄는 색의 비닐을 사용해 교통사고도 예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제리백
제리백은 물통이 쏙 들어가도록 디자인됐다.

제리백이란 이름은 노란색 플라스틱 물통의 우간다식 명칭 '제리캔'에서 따왔다. 제리캔이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쓰던 휘발유통을 부르던 말로, 우간다 사람들이 이것을 물통으로 사용하면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플라스틱 통에도 이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의 흰색 네모난 기름통과 비슷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제리백을 물 길러 갈 때는 물통 운반용으로, 학교에 갈 때는 책가방으로 쓰고 있다.

핀란드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던 박씨는 2011년 우간다에 갔다가 아이들이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을 보게 됐다.한 달에 35달러짜리 우간다 쪽방에서 6개월 동안 지내면서 어린이들의 생활과 동선을 관찰했다. 박 대표는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물 긷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14년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한 재래시장에 월세 100달러를 내고 4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제리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지 직업학교에서 재봉 교육을 받은 우간다 여성 두 명을 고용했다. 지금도 재료 손질부터 꿰매는 것까지 모두 우간다 여성들의 손을 거친다. 물통 가방은 전량 우간다에서 만들어져 우간다 어린이들에게 기부된다.

처음엔 소셜 펀딩을 통해 받은 기부금으로 물통 가방을 만들어 기부했지만, 지금은 면 소재 가방을 만들어 판매한 수익으로 물통 가방을 만들고 있다. 면 가방은 우간다와 우리나라, 핀란드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2년간 어린이들에게 나눠준 제리백이 총 1000개쯤 된다. 박씨는 "우간다에서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아프리카뿐 아니라 남미 등 물이 부족한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가방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